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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사찰여행, 경북 영천의 천년고찰 '은해사'

by 글곰 2024.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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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북 영천시 청통면 은해사로 300 미타도량 팔공산 은해사

연락처 : 054-335-3318

입장료 : 무료

주차료 : 무료

 

은해사는 문화재 관람료가 무료로 된 사찰입니다. 그 만큼 문화재가 많은 절이라는 것이겠죠. 산책하기에도 너무 좋은 사찰입니다.

주차장에서 은해사로 가는 길에는 식당가도 잘 되어 있어서, 관광지 느낌이 있는 사찰입니다.

천년 고찰 팔공산 은해사

은해사는 조선 31본산, 경북 5대 본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의 자리를 지키는 경북지방의 대표적 사찰입니다.

교구 본사중 본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하며, 신라 41대 헌덕왕 1년(809년)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사찰이 해안사인데 이 해안사로부터 은해사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암자만도 여덟 개가 있고 말사 숫자가 50여 개에 이르고 한국 불교의 강백들을 양성, 교육하는 "종립 은해사 승가대학원"이 있는 사찰이기도 합니다.

불, 보살, 나한 등이 중중무진으로 계신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은해사입니다.

 

한편으로 은해사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 날 때면 그 광경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 하다고 해서 은해사라고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여름
지난 3월

어떤 계절에 가도 좋은 곳입니다.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절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마음 가는데로 하시면서 기도를 하시면 됩니다.

돌아가신 조상님들 고통 받지 말라고 기도 드리고,

부모님 잘되라고 기도드리고

자식들 잘되라고 기도드리고

부부도 잘되라고 기도드리고

나도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드리세요.

여러분의 염원이 부처님과 신들에게 닿아 분명 도움을 주실겁니다.

 

역사 속 은해사 스님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수와 불사를 거듭한 은해사는 한국을 빛낸 여러 고승을 배출하였습니다.

신라시대에는 우리나라 불교의 새 장을 여신 화쟁국사 원효스님과 해동 화엄종의 초조이신 의상스님이 있고, 고려시대에는 현재 조계종의 종조이신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 삼국유사를 저술하신 보각국사 일연스님 등이 있습니다.

(일연스님과 원효스님의 추모 다례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홍진국사가 머무른 뒤부터 선교양종의 총본산으로 사격이 고양되었고 화엄학의 대강백이신 영파성규 스님이 이곳을 중창한 뒤로는 화엄교학의 본산으로서 그 명성이 높았습니다.

 

은해사 성보박물관

 

 은해사 내에는 보물 제 1270호인 은해사 괘불 탱화, 대웅전 아미타 삼존불, 후불탱화, 괘불, 신장탱화, 쇠북 등 수많은 문화재가 있습니다.

 은해사 성보박물관은 은해사를 중심으로 암자와 말사를 비롯하여 인근 지역의 성보문화재를 수집해서 도난과 훼손을 방지하고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 전시하기 위한 성보박물관을 건립하였다. 은해사 성보박물관은 1996년 12월23일 착공하여 2003년 4월 19일에 준공하였고, 2005년 5월에 개관하였습니다.

 성보박물관은 건평 140여평의 전면 9칸, 측면 5칸의 전통목조건축 형식에 실내전시공간을 비롯하여 학예실, 수장고등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은해사 역사

 신라 41대 헌덕왕이 즉위한 809년에 해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사찰이 해안사인데 이 해안사로부터 은해사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헌덕왕은 조카인 40대 애장왕을 폐위시키고 즉위한 왕입니다. 당시 정쟁의 피바람 속에서 숨진 원혼을 달래며 왕의 참회를 돕고 나아가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위해서 창건한 사찰이 은해사의 시초가 되는 해안사입니다.

 운부암에 가는 길 부근인 해안평이 그 해안사 절터이니 운부암을 가는 길에 한번 관심있게 살펴보기 바랍니다. 

 해안사 창건후 고려시대 1270년(원종 11년)에 홍진국사가 중창하였고, 1275년 충렬왕 때 원참스님이 중건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도 1485년 성종 16년에 죽청스님과 의찬스님이 묘봉암을 중창하였으나, 1545년 인종 원년에 큰 화재가 발생해 사찰이 전소되었다고 합니다.

 이듬해 1546년 명종 원년에 나라에서 하사한 보조금으로 천교화상이 지금의 장소로 법당을 옮겨 새로 절을 지었으며 이 때 법당과 비석을 건립하여 인종의 태실을 봉하고 은해사라고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1563년 화재로 소실되고 이듬해에 묘진 스님이 중건하였으며, 1589년 선조 22년에 법영대사가 법당을 현재의 자리에 크게 중창하고 사찰의 규모를 확장하는 일대 불사를 이루어 내었습니다.

 그 후 1592년 임진왜란이 있었지만 1651년 효종 2년에 각 전각들이 단청 불사를 시행한 기록으로 보아 왜란을 격으면서도 큰 피해는 입지 않은 듯 합니다.

 1712년 숙종 38년에는 은해사를 종친부에 귀속시켰고, 1714년에는 사찰 입구 일대의 땅을 매입하여 소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은해사 앞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그때에 심어진 것으로, 3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나무들인 것입니다.

 1761년 천왕문을 세우고 1772년에는 자암스님이 대웅전 불상을 개금하였으며 도봉스님이 영산전과 시왕전의 불상을 개분했습니다.

  영조는 왕자시절에 이 은해사를 잘 수호하라는 완문을 지어 보낸 일이 있었는데 이것은 영조 등극후에 어제완문이라 하여 이절을 수호하는데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하지만 1847년 헌종 13년에 은해사 창건이래 가장 큰불이 났고, 이때의 화재는 너무 가혹한 것이어서 극락전을 제외한 천여 칸의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습니다. 그러자 인종의 태실 수호사찰이며 영조의 어제수호 완문을 보관하고 있는 사찰인 은해사를 중창하고자 당시 영천 군수 김기철이 300궤미의 돈을 박봉에서 털어내 시주했으며, 대구감영과 서울 왕실의 시주가 계속 답지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수만냥의 재원을 확보하여 3년여간의 불사 끝에 헌종 15년 1849년에 중창불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이 때 지어진 건물이 대웅전, 향실, 고간, 심검당, 설선당, 청풍료, 보화루, 옹호문, 안양전, 동별당, 만월당, 향적각, 공객주 등인데 이 중에서 대웅전과 보화루, 불광의 삼대 편액이 김정희의 글씨로 채워졌습니다.

그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은해사는 말사 39개소, 포교당 5개소, 부속암자 8개소를 관장하고 있는 대본사입니다. 1943년까지만 하더라도 은해사에는 건물이 35동 245칸에 이르러 대사찰의 위용을 자랑했지만, 현재 은해사 본사 내에는 19개 건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규모가 있는 절이라서 돌아보기 좋습니다.

산책하면서... 기도드리면서...고민도 불안도 덜어내시고

마음의 평안을 얻어 가세요.

 

쉼터 카페에서 차한잔하고 가셔도 좋습니다.

 

종교적인 부담이 없다면 사찰 데이트도 좋을 만큼 멋짓 곳입니다.

한번 다녀와 보세요.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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