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길 264 운문사
연락처 : 054-372-8800
입장료 : 무료
주차료 : 유료(일반 2,000원, 경차 1,000원) * 카드 가능
산책로를 이용해서 둘러보세요.
경치도 좋고 공기도 너무 좋습니다. 건강해지는 느낌입니다.
계절마다 방문하여 그 때밖에 볼수 없는 자연을 느껴보세요.
추천드립니다.
운문사의 역사
운문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입니다.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한 신승이 창건하였으며, 608년(진평왕 30)에 원광 국사가 제1차 중창하였습니다.
원광국사는 만년에 가슬갑사에 머물며 일생 좌우명을 묻는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주었다고 합니다.
제2차 중창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寶壤)이 오갑사(五岬寺)를 중창하였다고 하며, 937년 고려 태조 왕건이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운문선사(雲門禪寺)라 사액하고 전지(田地) 500결을 하사하였다고합니다.
제3차 중창은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가 송나라에서 천태교관을 배운뒤 귀국하여 운문사에 들어와 중창하고 전국 제2의 선찰로 삼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당우 일부가 소실되었고, 1690년 (숙종 16) 설송(雪松)대사가 제4차 중창을 한 뒤 약간의 수보(修補)가 있어 왔습니다.
1835년 운악(雲岳)대사가 제5차 중창을, 1912년 긍파(肯坡)대사가 제6차 중창을 하였으며, 1913년 고전(古典)선사가 제7차 수보하였고, 비구니 금광(金光)선사가 제8차 수보를 하였다고합니다.
1977에서 98년까지 명성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대웅보전과 범종루와 각 전각을 신축, 중수하는 등 경내의 면모를 한층 일신하였습니다.
현재는 30여 동의 전각이 있는 큰 사찰로서 규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운문사는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되었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되어 승려 교육과 경전 연구기관으로 수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는 사찰입니다.
운문사 은행나무
수령 약400년
나무 높이 21.5m, 가슴높이 둘레 4.7m
나말려초의 운문사
[운문사사적]에 의하면, 557년(진흥왕 18 년)에 한 신승(神僧)이 북대암 옆 금수동에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하여 도를 깨닫고, 도우(道友) 10여 인의 도움을 받아 7년 동안 5갑사를 건립하였는데, 동쪽에 가슬갑사, 서쪽에 대비갑사(현 대비사), 남쪽에 천문갑사, 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현 운문사)를 창건하였으나 현재 남아 있는 곳은 운문사와 대비사 뿐입니다.
그후 600년 (신라 진평왕 22) 원광 국사가 중창하였다고 보나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그는 대작갑사와 가슬갑사에 머물면서 점찰법회를 열고, 화랑도인 추항과 귀산에게 세속 오계를 내려줌으로써 화랑정신의 발원지가 되었으며, 오갑사가 창건된 시기는 신라가 불교를 중흥하고 삼국통일을 위해 국력을 집중하여 군비를 정비할 때였다고합니다.
이때 오갑사가 운문산 일대에 창건되고 화랑수련장이 만들어 지며, 그것은 곧 신라가 서남일대 낙동강 유역으로 국력을 신장해가는 과정으로써 운문사 일대가 병참기지로서 당시 신라로서는 전략상의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고려, 조선시대의 운문사
[삼국유사] 보양이목조에는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태조왕건은 운문사에 있던 보양국사의 계책으로 이 일대를 평정하였다. 그 뒤 후삼국의 사회적 혼란을 어느 정도 수습한 왕건은 937년(태조 20년), 대작갑사에 '운문선사'라는 사액과 함께 전지 500결을 하사하였다." 고 합니다.
이 때부터 대작갑사는 운문사로 개칭되었고, 경제적 기반을 튼튼히 구축한 대찰로서 지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 학일이 제3차 중창한 후 왕사로 책봉되었으며, 원응국사는 1129년(인조 7) 부터 이 절에 머무르실 때 운문사의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1277년 일연선사는 고려 충열왕에 의해 운문사의 주지로 추대되어 1281년까지 머무르셨는데, 이 곳에서 일연은 『삼국유사』 의 집필을 착수하였다고합니다.
운문사의 절 동쪽에는 일연선사의 행적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선시대인 18세기 중반, 운문사는 설송 연초대사가 제4차 중창할 때와 19세기 전반 헌종 년간에서 운문사의 사세는 상당했습니다.
운문사의 제5차 중창주인 운악화상은 1839년에 오백전을 중수하였고, 이듬해 응진전과 명부전, 미타전, 내원암, 북대암등을 중건하였으며, 다음해에는 청신암을 창건하였고, 1842년 금당을 중건하였습니다.
근현대의 운문사
해방이후 제 1세 김상명 스님에서 제 4세 박상웅스님까지 잠시 대처승이 거주하였습니다.
1950년대 교단정화 이후 비구니 정금광 스님이 1955년 초대 주지로 취임하여 제 8차 보수.중창하였으며,
이후 2.3대 유수인, 4대 배묘전 , 5대 이태구, 6대 안혜운, 7대 위혜안 스님을 거쳐 8대부터 12대까지(1977~1998) 전명성 스님이 운문사 주지와 학장을 겸임하면서 제9차 중창불사를 이룩, 대웅보전과 요사 등 29동을 신축하고, 만세루 등 기타 전각들을 중수하는 등 명실공히 대가람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다고합니다.
이어 1998년부터 제13대 주지로 송혜은 스님이 부임하면서 선원을 신축하여 교와 선을 아울러 익힐 수 있는 도량으로 가꾸었고, 2002년부터 제14대 주지는 흥륜강사스님이 소임을 사셨으며, 15대는 2010년까지 진성스님이 주지를 맡았다고 합니다.
2014년까지 일진강사스님, 2018년까지 진광강사스님, 2022년까지 운산강사스님, 2022년부터 2024년 10월 소임만기를 앞둔 진성스님이 주지소임을 살고 은광강사스님이 차기주지소임으로 내정되어 있습니다.
1997년 비구니 강사를 양성하는 전문 교육기관으로는 최초로 승가대학원이 개설되었습니다.
1958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된 이래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명칭이 바뀌고 전문교과 과정과 교수진을 확보하여 승가대학의 명분에 걸맞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4년 현재까지 60회, 209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2008년 설립한 "보현율원"은 11명, 2010년 교육원으로 부터 인가를 받은 "한문불전승가대학"은 6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습니다. 이곳에서 경학을 수학하고, 계율을 수지봉행하고 있으며,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 청규를 철저히 실천하고 있다고합니다.
운문사 처진 소나무 (천연기념물 제180)
천연기념물 제 180호로 지정된 운문사 처진 소나무는
주변의 인공적인 압력 없이도 늘어져서 넓게 자라는 나무로 유명합니다. 수령 500년에 이르는 이 소나무는 어느 선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꽂아둔 것이 뿌리를 내렸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해마다 음력 3월 3일인 삼짇날 막걸리 12말을 희석하여 영양제로 부어준다고합니다.
보물 제 316호인 원응국사비와 함께 운문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3기의 비석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운무사를 더욱 멋지게 만들어주는 소나무입니다.
맑은 하늘과 어우러져 상쾌한 기분을 만들어 주네요.
대웅보전
대웅보전에서 잠시 기도드렸습니다.
소원 명당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그만큼 오래되고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성취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데이트 하기에도 너무 좋은 곳입니다.
운문사는 진짜 사진이 너무 잘 나와요.
어디에서 찍어도 다 잘 나옵니다.
봄에 다녀온 사진과 같이 몇장 올려보았습니다.
단풍이 드는 계절입니다. 단풍 구경도 하시고 마음 수양도 하시고
힐링도 하시고,
사랑도 싹티우시고 꼭 방문해 보세요~
문화재도 많이 있으니 같이 구경해 보세요~
추천드립니다.